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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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학교에서는 우리 같은 신임장교들만 교육생으로 받는 게 아니다.

부사관 교육생도 있고, 타군들과 같이 듣는 합동교육과정도 있다. 그런데 우리 차수가 진행될 때 공교롭게도 정보 특기 대선배이신 영관급 장교분들이 단기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되었었다.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지나가다 뵙게 된다면 경례만 잘하면 되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이 소문난 ‘축구광’이었던 것이다.

그분은 우리 정보학교장보다도 선배였고,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요즘 신임 소위들은 얼마나 잘 뛰는지 한번 볼까?’하고 넌지시 건넨 한마디가 화살처럼 우리에게 날아왔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밖에는 비가 거세게 퍼붓고 있었다.

수업 중간에 쉬는 시간이 끝나고 들어온 교관이

‘이따가 이 수업 끝나자마자 옷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집합해.

OO께서 축구하자신다.’라고 이야기했다.

교관의 표정에도 하기 싫은 내색이 가득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아, 폭우 때문에 취소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있지? 그럴 일 없을 거야.’

그는 우리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했다.

‘이게 다인가?’

그분이 우리 학교장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거야. 강제로 그러지 마.’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말은 들은 학교장은 ‘다 튀어와!’라며

먼발치 지붕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동기생들을 향해서 매섭게 소리쳤다.

분명히 강제로 시키지 말라고 하신 것 같은데,

그 말을 듣자마자 청개구리처럼 행동하는 학교장이었다.

그야말로 진흙탕 축구였다.

비가 온 탓에 미끄럽기도 했지만,

그보다 뛸 때마다 다량의 진흙이 온몸으로 튀는 게 매우 성가셨다.

정말 재밌는 건 우리에게 그토록 위엄을 세우고,

우리에겐 하늘 같았던 그 교관들이 진흙 바닥에서 나뒹굴면서까지 열심히 뛰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은 우리들에겐 무언의 압박과도 같았다.

‘나보다 열심히 안 뛰면 가만 안 둔다.’는 마음의 소리가 그들의 표정에서 들렸다.

그날부터 그들의 교육과정이 끝나는 날까지 예외는 없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축구를 했다.

축구라기보다는 전투에 가까웠다.

그분은 3일 동안 20골이 넘는 대기록을 세웠다.

축구를 정말 잘하시기도 했지만 단지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을 테다. 우리는 ‘접대 축구’ 같지 않아 보이는 ‘접대 축구’를 해야 했다.

대놓고 잘할 수도, 대놓고 못할 수도 없었다.

정말 열심히 뛰되 결정적인 순간에는 제껴지고, 먹혔어야 했다.

평소에 축구를 좋아했던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뛰었던 탓에

‘너 이름 뭐냐? 그래도 너가 제일 잘 뛰네.’라며 칭찬을 받았다.

‘이렇게 라인을 타는 건가. 장기 지원해야 되나?’

0.01초 정도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비 오는 날의 군대스리가 : '장기복무해야 되나?'

https://brunch.co.kr/@stophun/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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