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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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경어를 폐지한다. 다 엎드려!!'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기에 앞서

월요일 입대와 동시에 금요일까지

약 일주일은 '가입교'기간으로 진행된다.

 

가입교 기간동안에는

피복 지급을 위한 신체치수 측정,

인성검사, 체력 평가, 혈액·혈압 측정 등

각종 행정처리가 진행된다.

 

물론 이 모든 행정처리가 끝나기 전까지는

민간인 대우를 받게 된다.

때 되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식사도 상당히 퀄리티가 좋다.

 

이 기간에 빨간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는

훈육관들이 수 차례 주의를 주곤 하지만

'말 좀 제대로 들읍시다.'

'한 줄로 서세요.'

 

존댓말로 우리를 대하기 때문에

크게 경각심을 갖지 않게 된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선글라스 너머에서

눈빛이 이글거리는 듯 하고,

'두고 보자.'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이 기간에는 아직 정식 후보생 신분도 아니고

금요일 체력 검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집에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5일의 가입교 기간을 즐기면 된다.

 

실제로 후배이자 내 절친한 친구는

시력 때문에 마지막 날 집에 

돌아오게 됐다.

 

그렇게 가입교가 끝나고 

주말로 넘어가기 전 금요일에는

소름 끼칠 정도로 고요한

'폭풍전야'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

내일 일어날 폭풍을 미리 체험하게 되었다.

 

나와 여러 후보생들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훈육관이 와서는

'방금 속옷만 입고 들어왔다, 튀어 나와!'

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난생 처음 듣는 dB의

샤우팅(=사자후)이었다.

 

장교대 1층에서는

훈육관들이

초고화질의 CCTV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마치 '파놉티콘'을 연상시키는 구조랄까.

 

그날 저녁에도 그렇게 CCTV를 보고 있다가

속옷만 입고 샤워장으로 가는 후보생을 발견하고는

방송을 통해 수 차례나 구두 경고를 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샤워장에 간 용감한 후보생을

족치기 응징하기 위해서 직접 샤워장에 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 어느 한 명도 자수하지 않았다.

 

그리고 훈육관은 싸늘한 한 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두. 고. 보. 자.'

 

잠을 청하면서 조금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일이 주말이라는 생각에 잠에 들 수 있었다.

'별 일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잠을 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방송 소리가 울려퍼졌다.

 

'전 후보생은 전투복 복장으로 연병장에 집합해라. 5분 준다.'

 

'빨리 빨리 안 뛰어?!'

'튀어 나와!'

 

어제의 악몽이 불현듯 떠올랐다.

 

분명 오늘까지는 가입교 기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허겁지겁 연병장에 도착했는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누구는 저기서 '악!!!'하면서 익룡 소리를 내고 있고,

누구는 땅바닥에서 구르고 있고,

 

그때, 한 훈육관이 메가폰을 잡고 말했다.

'지난 1주일간 대접해주니깐 좋았지?

그건 너네가 민간인이니까 그랬던 거고.

이제 너네 다 군인이야.'

 

'지금부터 경어를 폐지한다. 다 엎드려!!'


정확히 몇 분, 아니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우웩'하면서 구토하는 후보생들이 늘어났다.

 

내 앞에 있던 190의 거구도 '픽'하더니 쓰러졌다.

 

나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한 훈육관이

'방에 가서 가방 가져오는데 5분 준다.'

우리를 돌려보내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살벌한 소지품 검사 시간이 끝났다.

 

이제 막 신분전환식이 끝났을 뿐인데.
이제 시작일 뿐인데.
걱정이 태산이다.
과연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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