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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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복무를 염두에 두고 온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배속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 테다. 이는 병사와 간부를 막론하고 공통된 사항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복무하는 것만큼 축복된 일은 없으니깐. 그리고 이 배속지를 두고 우리 모두는 피 튀기는 전쟁을 치른다.

분명 장교대에서 '동기 사랑, 나라 사랑', '우리는 하나다' 등 단결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수백 번도 넘게 외쳤겠지만, 이곳 특기학교에서만큼은 예외다.

앞서 말한 바 있지만 특기학교에서는 방배정부터 성적순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자신의 등수가 모두에게 노출된다. 이 말인즉슨, 내 앞 방에 사는 친구들을 모두 꺾어야만 나에게 선택권이 부여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꼴등이 1등을 꺾고 배속지를 고르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장교대에서 좋은 군번을 받기 위해 악착같이 다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잠깐 배속지 선정이 이뤄지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고 넘어가 보도록 하겠다. 예를 들어 장교대에서 100명의 신임장교가 임관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들은 훈련 성적에 따라서 좋은 군번을 받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군번이란 낮은 숫자의 군번을 말한다. 군번을 부여받은 100명이 또 각각 A, B, C, D 특기로 나뉘게 되는데, 사이좋게 25명씩 A, B, C, D 특기를 골라 갔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100명 중 1등은 당연히 어느 특기를 가더라도 1등일 테다. 1등 친구가 A 특기를 가고, 극단적으로 가정하여 2등부터 26등이 B 특기를 갔다고 해보자. 그리고 27등이 A 특기를 간다면, 그 친구는 A 특기에서 2등이 된다. 쉽게 말해서, 나보다 군번이 좋은 친구들이 내가 선택한 특기에 적을수록 나에게 이롭다는 얘기다. 그리고 나는 이 방식의 최대 수혜자였다. 전체 400명 중에서 40등을 했지만, 정보 특기에서 나보다 군번이 좋은 사람이 딱 1명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정보 특기에서 2등을 한 셈이었다.

특기학교에 와서는 장교대에서의 성적 50%와 특기학교 성적 50%를 합산하여 나온 평균값으로 최종 성적이 정해진다. 그리고 그 최종 성적에 따라서 1등부터 꼴등까지 순차적으로 배속지를 고를 수 있게 된다. 단, 평균값이 같을 경우 특기학교 성적이 높은 사람의 성적이 우대된다.

따라서 내가 장교대 성적이 2등이더라도 특기학교에서 1등을 할 경우, 최종 1등을 거머쥘 수도 있게 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특기 학교 : 배속지 전쟁의 서막

https://brunch.co.kr/@stophun/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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