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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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바이두

《장마딩의 여덟째 날》은 중국 작가 리루이가 2012년에 출간한 저서이다.

리루이는 1950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마오쩌둥 주석의 비서를 지내고

공산당 원로를 지내기도 한 고위층 인사이다.

하지만 리루이는 2003년에 산시작가협회의 부주석을 사임하고 작가협회를 탈퇴한다.

중국에서 작가협회를 탈퇴하는 것은 공직에서 벗어나 민간인이 됨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의 이러한 모습은 자유로운 문예창작활동을 검열하는 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오로지 작품으로만 이야기하겠다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중국 당대 문단과의 합창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리루이는 서구 중심주의나 서양 문예이론에 심취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강했고,

중국인들의 자긍심을 살리고자 하였다.

특히, 중국문학의 토속성과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힘썼는데,

그의 작품은 지극히 중국적이고, 토속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마딩의 여덟째 날은 19세기 말 의화단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다.

19세기 말 산업혁명으로 서구열강들은 값싼 원료공급이 가능해졌고,

공장에서 만들어낸 대량 생산품들을 팔기 위해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관심은 주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이었는데,

동양의 중심지,

더 나아가 세계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중국 또한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로 군침이 도는 대상이었다.

결국 영국은 아편전쟁을 일으켰고

아편전쟁에 대한 책임을 청에 물어 난징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영국은 홍콩을 할양 받았고, 광저우를 비롯한 5개항이 개항 되었으며,

전쟁으로 인한 일체의 피해 보상금과 함께 최혜국 대우를 얻어냈다.

이는 서구열강들에게 중국 침략의 발판을 만들어준 결과가 되었고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인들의 자긍심에 크게 스크래치를 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서양 사람들이 중국에 거주하면서 천주교는 자연스럽게 커져갔다.

이에 대하여 서양인과 서양 종교에 대한 반감과 함께

1900년 중국 산동성에서 반천주교 폭동이 일어나 화북 일대로 퍼져 나갔다.

이를 의화단 사건이라고 하는데,

의화단의 중심에는 백련교 일파로 불리는 종교적 비밀결사 단체가 사회의 모순과

서양 세력의 확장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부청멸양’을 부르짖으며 무력적 배외운동을 펼쳐 나갔다.

특히 천주교를 박해했는데, 청 정부도 이를 동조하여 폭동은 점차 확대되어 갔다.

그러나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 일본까지 합세하여 의화단에 맞섬으로써

결국 실패로 끝나 중국의 식민지화를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리루이의 《장마딩의 여덟째 날》은 의화단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중국인들의 심리적 상태를 반영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지오반니(장마딩)는 천주교를 전하러 꼬르 신부와 함께 중국에 온 이탈리아 사람으로,

그들이 천주교를 전파해 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삼신할미당과의 종교적인 갈등을 그려 나가고 있다.

가뭄이 들 때 중국인들은 하늘어미 여와(삼신할미)를 신봉하는 하늘바윗골에서

그들만의 토속적인 방식으로 천재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였다.

이를 미신으로 간주하고 있는 천주교는 이러한 방법들을 거부했고

이와 같은 문화와 종교적 차이는 결국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천주교와 중국 토속 종교의 방식이 서로 충돌하면서 장마딩은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쓰러졌고

이를 더없이 좋은 선교의 기회로 여긴 레 꼬르비노 주교는

삼신할미당의 우두머리 장텐츠의 목숨으로 보상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야기는 반전의 상황으로 발전 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장마딩이 기적처럼 사흘 만에 소생하게 된 것이다.

레 꼬르비노 주교는 장마딩의 회생을 숨긴 채

자신의 목적 달성만을 위해 무고한 장톈츠를 희생시키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 우리는 가장 순수하고 진실해야만 할 종교가 확장이라고 하는 목적성에 진실을 왜곡시킴으로써

한 사람의 희생양을 만들어낸 비극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장왕은 종교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인 무고한 희생자였다.

힘으로 몰아 부치는 서양을 향한 민중들의 좌절과 분노,

그리고 선교라고 하는 이름 아래 무장한 선교사들의 충돌이 가져온 결과는

죄의식 없이 저질러진 피의 학살이었다.

제국주의적 선교에 있어서 기본적인 양상은

현지 개종자들 위에 군림하는 힘의 방식으로 중화사상을 자부하며 살아왔던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주교에게 있어서는 천주교가 그의 생명과도 같은 신앙이었지만

장왕에게 있어서의 삼신할미 또한 그의 신앙이었다.

이들의 신앙 대상과 방법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들이 추구하려는 가치는 다르지 않았다.

장톈츠의 아내인 장왕은 남편을 잃게 된 상심 때문에 실성 하게 되는데,

이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죽을 각오로 차가운 죽음의 땅에 빈사상태에서 제 발로 찾아온 장마딩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남편의 원수 장마딩을 죽일 수도 있었으나

자신의 남편으로 인지하고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주는 모습은 가슴이 ‘찡’하기까지 하다.

장마딩은 선교와 함께 선교의 일을 하고자 중국 땅에 왔지만,

그의 눈에 비추어진 현실은 종교가 추구하는 바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들이었다.

주교는 오로지 선교라고 하는 이상과 자신의 허울 좋은 명예에만 급급해 있었고

중국인들의 애타는 심정은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마딩은 혼돈된 상황에서 선교와 양심 두 사이에서 갈등으로 고뇌하며

종교와 구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을 보면,

그동안 자신의 문화 속 젖어 있는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중국인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 한 채 삼신할미 사당을 헐고 성당을 지으며

천주교 신앙만을 전하고자 하는 목적뿐이었다.

중국인들은 천주교를 거부하고 배타하고 있다.

장마딩은 이들 중간에 서서 고뇌한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함으로 일어난 결과,

자기 때문에 죽게 된 장왕 남편의 죽음 앞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괴로워한다.

 

문화는 절대적인 가치로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

그것의 우열을 나눌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문화적 우월감은 폭력을 낳고 폭력은 악순환이 계속되어진다.

서양의 선교는 타문화 사람들의 개종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문명화 시키는 것까지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돌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문화는 오랜 역사의 과정을 거쳐 온 산물이기 때문에 고유의 가치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느 것에 종속 되어질 성질이 아니라

상호 이해 속에서 받아들어지고 화합되어야 할 요소들인 것이다.

리루이는 자신의 문학 작품을 통해,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서구 세력을 대항하여

중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자부심과 자긍심을 부각 시키려고 노력 하였다.

장마딩이 숨을 거두면서 장왕에게 남긴 말이 가슴 속 깊은 한 켠에 남는다.

더보기

나는 이제 곧 죽을 것이지만 죽음은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만약 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을 다 했다면, 죽음은 바로 행복입니다. 당신은 지금 나에게 행복을 주었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조금 더 일찍 그것을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나는 당신이 결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지금 다른 사람의 눈에, 나도 더 이상 신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라야 가장 멀리 퍼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장마딩은 인간의 참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남의 눈에 비추어지는 자신은 비록 천주교 신자가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죽으면서까지 자신은 여전히 천주교 신자였다.

자신을 환생한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장왕 또한

천주교 신자가 아닌 중국 토착 신앙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리루이가 그의 작품을 통해 주고자 했던 강력한 메시지는,

서로를 인정하고 화합하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살아갈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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