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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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특기로서 가장 빛날 수 있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는가? 바로 브리핑을 할 때이다.

정보학교 교육과정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브리핑 시간'은 모든 동기생들이 두려워하는 순간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학 교육까지 정상적으로 끝마친 학생들이라면 '발표'를 밥먹듯이 했을 테니 브리핑을 우습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진행되는 모든 브리핑의 주제는 완전히 생소한 '군사 내용'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대학교 수업에서 내 전공 지식을 자랑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구글'의 힘을 빌리면 모르는 것도 아는 척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곳 정보학교에서는 인터넷은커녕 스마트폰도 사용할 수 없다. 한컴오피스만 활용할 수 있는 컴퓨터와 군사 내용이 수록된 책자, 단 두 개만 가지고 브리핑 자료를 만들어야 하며 그렇게 만든 자료로 브리핑을 해야 한다. 정말 열악한 환경이지만 정보의 빈부격차가 없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공평하다고 볼 수 있으려나.

사실 브리핑이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만약 엉터리 자료로 엉망의 브리핑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이 기꺼이 감수하겠다면 그 누가 뭐라 할쏘냐. 하지만 정보학교에서는 세 명의 교관이 무서운 샤우팅을 해대며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누가 이따위 자료로 브리핑을 해! 미쳤어?’

'목소리 크게 안 해? 더 크게! 더! 그게 다야?'

여기에 차마 적지 못하는 '욕설'도 있다.

브리핑 시간 동안에는 마치 나 자신이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내 차례가 끝났는데도 이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모든 시간이 끝날 때까지 견뎌야 하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사실 세 명의 교관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가 있는데, 바로 정보학교장이다. 교관들은 '정보학교장님이 직접 참관한다고 하셨는데, 언제 들어오실지 모르니깐 늘 대비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정보학교장은 마치 '마동석'을 연상시키는 체구의 중년이었다. 군복을 입지 않고 있었더라면 '건달 두목’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정도로 무서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런 분이 불시에 참관하러 들어오신다면, 브리퍼는 분명 얼어붙게 될 것이다. 부디 내 차례일 때 들어오시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었고 다행히 내 차례 동안은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셨다.

나중에 모든 과정이 끝나고서야 교관으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브리핑 시간의 목적은 하나였다. 어차피 열악한 조건에서 만들어 낸 자료의 퀄리티야 고만고만할 테고, 중요한 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정보장교로 자대 생활을 시작하면 수없이 많은 브리핑을 하게 된다. 브리핑을 듣는 다양한 대상이 있겠지만, 대령급 또는 장군급에게까지도 브리핑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그때마다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브리핑을 하려면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브리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의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할까. 교관들이 그렇게 샤우팅을 하며 몰아세운 것도 그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또한, 정보학교장이 참관한다고 겁을 준 것도 사실상 '망태할아버지'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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