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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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조의 PCR검사를 위해 방문한 인근 보건소는 인산인해였다.
마감시간이 18:00였는데, 오랜 시간 줄을 섰더라도 마감시간에 이르면
검사가 종료된다는 문구가 여러 곳에 붙어 있었다.
시간은 오후 5시 정도였는데,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지금부터 줄을 선다 하더라도
6시 전에 우리 순번이 되어 돌조가 검사를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보장이 없는 게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한 상태였다.
우리의 처지가 다급해보였는지 누군가 지금 줄 서면
2시간은 기다려야 할거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정에 호소해보기로 했다.
보건소 관계자로 보이는 인원을 찾아 아래와 같이 읍소했다.
'현재 아이가 고열로 상당히 위급한 상황인데,
입원을 하기 위해서는 PCR 확인이 필요하다고 해서 부리나케 달려왔다.
염치없는 것 알지만 우선적으로 검사를 할 수 있게 해줄 수 없느냐.'
라는 무리한 부탁이었다.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인 걸 알았지만
내 말이 길어지자 담당자는 두 발짝 물러서더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사정은 알겠지만 지금 다른 사람들 기다리는 거 보이지 않느냐.'
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으로 이해하는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우리가 살아가는 코로나 시대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거리를 두는 게 마찬가지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결국 우리는 보건소에서 가장 가까운 선별진료소로 가기로 했다.
해당 진료소의 마감시간은 17:30이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는 신세였다.
17:25 경 도착했는데, 해당 선별진료소 역시 보건소처럼
마감시간이 되어 마감을 하는 단계였고 입구는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보건소에서와 마찬가지로 담당자들은 끈질기게 달려드는 피검사자들을 달래고 있었고
우리는 입구 옆에 있는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또 한 차례 읍소를 하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안간힘이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됐으니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리는 괜찮으니 돌조라도 검사를 받게 해달라고 사정하고
우리보다 앞선 줄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는 '나는 괜찮으니 아기라도 받게 해주라.' 힘을 실어 주고
또 일부는 '똑같이 해야지. 왜 아기가 우선이냐. 나부터 해줘라.' 요구하기도 했다.
담당자가 곤란한 상황이 된 것 같자 조금 더 직급이 있어 보이는 관계자가 나와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도 한 아이의 부모입니다. 아기는 살려야죠.'
돌조의 엄마가, '제가 보호자이기 때문에 아이 혼자 혹시 양성 판정을 받을 경우
아이를 돌봐줄 수가 없습니다.' 라고 울면서 호소하자
관계자는 돌조의 엄마의 검사까지 진행시켜주셨다.
그리고 돌조식구 때문에 다른 인원들까지,
계획에 없던 야근까지 하게 되었다.

나 역시 한때 국가의 녹을 받아 먹던 사람으로서
이러한 행위가 얼마나 힘든 결단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결심을 해준 관계자분께 지면을 통해서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돌조가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지금도 아찔하다.

PCR검사를 하고나서 집까지 이동하기 위해 아버지의 차량을 기다리던 중
돌조가 돌발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워낙 추웠고, 고열에 시달리던 돌조는 머리를 꽝꽝대며
스스로에게 해를 가하기 시작했고, 그외 몸의 움직임 또한 비정상적이었다.
다급해진 우리는 119에 응급 신고를 했고, 119 안내에 따라
아이컨택이 가능한지, 일어설 수 있는지 등을 확인했다.
다행히 아이컨택이 가능했고, 119는 15분 정도 기다려야 도착 가능하다고 해서 원래 계획했던 대로 아버지의 차량에 돌조를 태웠다.

PCR검사를 마치고 불과 30여 분 남짓되는 시간이었지만
정말 지옥같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차량에 돌조를 태운 뒤 다급하게 응급센터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까운 OO병원에 소아응급센터가 있었고,
또다시 돌조가 돌발행위를 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해당 소아응급센터는 코로나 의심 환자들도 진료를 볼 수 있는 곳이었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폐렴 진단을 받았던 대형 병원에서 발급한 진료의뢰서를 건냈다.

돌조와 돌조의 엄마는 진료실에 들어갔고, 그외 모든 가족들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여
밖에 나와 차에서 대기했다.
지금까지는 경황이 없어 올바른 사고판단을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아니 해야만 했다.

'오늘 받은 PCR검사에서 돌조가 양성 판정을 받는다면..?'
이 생각을 안할 수 없었다.

돌조와 돌조의 엄마는 아까 PCR검사를 받았지만
그외 식구들은 검사를 하지 못했으니깐.
일단 PCR검사를 받는 게 최우선이었다.
찾아 보니 독립문역 인근 선별진료소에서 밤 9:00까지 PCR검사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조금 더 가까운 월드컵경기장 인근 선별진료소에서도 밤 9:00까지 검사가 가능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혹시라도 돌조가 양성일 경우 우리 모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격리대상자는 아닌 상황이지만 만의 하나를 고려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씀드려 아래와 같이 행동하기로 했다.
아버지 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 내 차를 가지고 병원에 다시 돌아오면 돌조엄마가 내 차를 운전해 돌조와 집에 돌아올 수 있고,
그외 식구들은 아버지 차로 월드컵경기장에 가서 제 시간에 검사를 받기로.

내가 판단했을 때 위와 같은 프로토콜이 가장 합리적이었다.

그렇게 선별진료소에 도착해 검사를 진행하고
오늘 이 전쟁통에 끼니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밥 몇줄을 포장해 밤 10시가 다 되어 비로소 저녁식사를 했다.
돌조는 다행히 소아응급센터 진료를 받고 처방받은 약을 통해
열을 내려 잠에 들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말은 최대한 삼갔지만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갔고,
아버지는 혹시 돌조가 양성이면 나도 양성일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돌조가 아픈 동안 아버지가 계속 돌조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셨고
돌조의 초밀접접촉자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께 증상이 있는지 여쭸는데,
'오늘 신경쓰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두통이 좀 있네.'라고 답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같은 방에서 주무셨고,
나는 누나와 같은 방에서 잠을 청했다.
당연하게도 돌조는 돌조엄마와 같은 방을 사용했고,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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