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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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조는 다행히 열이 많이 내린 상태였다.
그러나 목에서는 아직도 쇳소리가 많이 나고
숨쉬는 건 다소 불편해보였다.
그래도 간밤에 잠은 잘 잔 모양이었다.

나는 건강염려자로서 역시나 잠에 들지 못했다.
새벽내내 인터넷 검색을 하며 찾아본 결과
유아 폐렴, 코로나 바이러스가
최근 유행하는 RS바이러스와 증상이 굉장히 유사하다는 내용을 발견했다.
요즘들어 RS바이러스(호흡기 세포융합 바이러스)가 영유아 건강을 위협한다는
기사 내용을 접했고, 해당 바이러스는 40도를 넘나드는 고열과
코막힘, 쉰 목소리(쇳소리), 폐렴 등 증상으로
현재 돌조가 겪고 있는 증상과 판박이였다.
특히, 장난감 등에서 많이 검출되어 더더욱 RS바이러스가 의심이 됐다.
그래도 차라리 RS바이러스에 걸린 것이고
신속항원검사에서 나왔던 양성 결과가 위양성이었으면 했다.
그렇다면 오늘 PCR검사에서 모두가 음성 판정을 받아
돌조의 빠른 쾌유만 격려하고 도와주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잠을 뒤척이다 새벽 4시쯤 일어났는데, 누나도 그 시간에 일어난 듯 했다.
'결과 받았어?' 누나가 물었다.
'아니, 아직.'

누나가 본인은 새벽 3시경 음성 통보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먼저는 누나가 음성이라니 다행임과 동시에 나도 음성이고
돌조도 음성이겠구나 하는 생각이었고
또 한 가지는 '혹시 내가 양성이어서 간밤에 옮겼으면 어떡하지?'하는 마음이었다.

원래 불안한 감정이 긍정적인 감정보다 우세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긍정적인 감정이 나를 지배하다가, 종국에는 후자로 넘어가버렸다.

새벽 6시부터는 계속해서 보건소에 연락을 취해
의도치않게 애꿎은 당직 상황실 사람들을 괴롭혔다.
누나는 새벽 3시에 왔는데, 나는 왜 안 오는지 물었는데
상황실 사람들이 알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7시 40분 정도 즈음에
음성 문자 통보를 받고 안심하게 되었다.
이내 어머니도 음성 문자 통보를 받았고,
'휴. 모두 음성이겠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9시가 지나서도
아버지와 돌조, 돌조엄마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다 못해 보건소에 연락을 했다.
수십 차례 시도 끝에 연락이 닿았고,
현재 코로나 확진자 폭증으로 인해 검사 결과가 늦어진다는 안내를 받았다.
얼마든지 기다려도 좋으니 모두 음성이라는 기쁜 소식이 기다리길 바랐다.
6명 가족 중 3명은 음성인데, 다른 3명이 양성이라면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아니 단 1명의 양성도 없어야 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인적사항을 하나씩 불러나가기 시작했다.

보건소 직원은 인적사항을 확인하고는
'음.. 재검이시네요?'

아버지, 돌조, 돌조엄마 모두 해당되는 동일한 답변이었다.

'네?'
'재검이면 다시 가서 검사하라는 건가요?'

'아뇨. 검사 기관에서 다시 검사한다는 얘기구요.
검사 채취량이 적거나 방법이 잘못 됐거나,
바이러스가 극소량 검출돼서 그런 걸 수 있어요.'

주변에 간호사 지인이 있어 물어 보니
재검인 경우 양성일 확률이 농후하다고
지금부터라도 격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아버지가 안방에서 나오시며 근심 가득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떡하지. 나 양성이래.'

그 얘기를 듣고는 순간 정신이 몽롱해졌다.
요즘 코로나 감기처럼 지나간대요 쿨한 척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내 돌조엄마가 '나도 양성이야. 돌조도.'라고 방에서 이야기했다.

나는 멍해진 상태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어머니가 늘상 하셨던 한 마디가 떠올라 정신을 차렸다.
'아버지 안 계시면 너가 우리집 가장이야.'

미혼자인 나는 아직까지 가장의 무게를 감히 떠올릴 수도, 감당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아버지가 하셨던 역할을 흉내라도 내야 하는 상황이다.
돌조를 비롯한 모든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래야만 했다.

나는 불현듯 인근에 거주 중이신 조부모님이 떠올랐다.
'아버지, 혹시 할아버지댁 가신 적 있으세요?'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인근으로 모셔와 수시로 방문하기 때문에 여쭸다.
아버지는 얼마 전 할머니가 부르셔서 수도꼭지를 고치기 위해 방문했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역시 부스터샷까지 접종을 완료하셨지만
여든을 훌쩍 넘겨 아흔을 바라보는 두 분은 백신과 무관하게 고위험군임에 틀림 없었다.

그러던 와중 할아버지가 다니시는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센터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모든 어르신들을 귀가 조치하고 PCR검사가 필요하여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단 우리집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난리인 것 같았다.
현재 기동력을 가진 인원은 나밖에 없었다.
돌조를 제외한 모두가 면허가 있었지만
아버지와 나, 돌조 엄마만 운전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검사하고 올게요.'
당차게 이야기했지만 내가 나가도 되는지조차 몰랐다.

보건소에서는 확진자 폭증으로 인해 확진자들에게 신속한 연락 조치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피검사자가 수십 차례 검사 결과 조회를 요청해야 확인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외 동거자가 자가격리를 해야하는지,
접종완료자가 음성 확인이 되더라도 외출이 금지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일단, 보건소에서 확진자 대상으로 연락이 오지 않았으며
문의할 때마다 전화가 연결되는 담당부서가 바뀌어 질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며칠 전 지침이 개정되어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누구는 나가도 된다고 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했다.)

다급하게 민원 콜센터에 연락을 취해 자초지종을 설명하여
위생장갑과 KF94마스크를 착용하고 조부모님을 모시러 갔다.
두분이 내려오신 뒤 어제 돌조가 검사를 진행한 선별진료소에 모시고 나왔는데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줄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코로나 검사를 하러 온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장시간 대기 끝에 조부모님의 검사를 마치고, 줄을 선 김에 나도 검사를 마쳤다.
또한, 의무대상은 아니지만 어머니와 누나 역시 검사를 진행시켰다.
어제 받은 PCR검사 문자에서는 음성 확인을 받았지만
양성 판정을 받은 가족들과 식사를 했기 때문에 나머지 셋도 위험할 거란 생각이었다.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속으로 '내가 이집 가장이다.' 수십 번 되뇠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 돌조, 돌조엄마는 보건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혈압, 당뇨 등 기저질환이 있으셨고
돌조는 유아인데다가 폐렴 증상이 있어 병원시설로 격리가 필요해 보였다.

보건소에 문의한 결과 현재 격리병동이 없어 대부분 자택치료를 진행해야 하고,
돌조의 경우 병원을 지정해주겠다는 안내를 받았다.

다행히 돌조의 폐렴 증세가 조금은 나아진 듯 했으나
응급상황은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염려스런 마음이었다.

시간이 지나 거리가 좀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 소재 병원 안내를 받았고
돌조와 돌조엄마는 해당 병원으로 이송됐다.

아버지는 음성 통보를 받은 나머지 셋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시설로 격리를 희망했으나 수리되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확진이 된 아버지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안방에서 나오지 않고,
식사와 각종 물품들은 문 앞에 두기로 하는 형태로
나름대로 생활 방식을 변형하기로 했다.

확진자가 발생하면 방역팀이 출동해
소독과 방역을 진행해주는거로 알고 있어 보건소에 연락을 했다.
보건소에서는 확진자가 있을 경우 방역 출동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결국 우리는 분사형 방역액과 소독용 물티슈로 세시간 가량 계획하지 않았던 대청소를 진행했다.
그리고 KF94를 사용하고 생활하며 화장실 사용 시 소독액을 사용하는 등
나름대로 방역을 철저하게 했다.

아버지가 격리치료를 완료하시면 우리 모두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게 맞나 싶었다.
확진자의 동거가족은 확진이 될 확률이 높아 보이는데,
방치 아닌 방치라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시대의 흐름이니 순응해야 하는 건지 싶었다.
이제는 코로나가 무작정 회피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정통으로 맞아서 극복하고 이겨내야하는 대상이 된 건가?

살 사람은 살려야지 하는 심정으로 짧은 가족 회의를 진행했다.
경우의 수를 나눠
오늘 검사 결과가 내일 아침에 나올 텐데
셋 중 1명이 음성이 나올 경우
셋 중 1명이 양성이 나올 경우 를 고려 했다.

만약 셋 중 1명이 음성이 나올 경우에는
아버지가 현재 격리하시는 것처럼
음성인 1명만 격리를 진행하는 방식이 가능해 보였다.
다만, 화장실 사용의 불편함(위험함)과 음식 섭취 등 문제 해결이 어려워 보였다.

셋 중 1명이 양성이 나올 경우에는
아버지가 격리하고 있는 안방에 들어가
아버지의 고독한 전투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위 경우의 수 모두 마스크 착용이 필수적이다.
상호간에 감염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경우의 수는
모두 양성이 나오는 경우였다.
겉으로 보면 최악의 경우이지만
면밀히 살펴 보면 최고의 경우이기도 했다.

모두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집에서 밖에만 나가지 않으면 되니깐.
아버지도 외로운 싸움을 끝낼 수 있고,
나머지 인원들도 화장실 사용의 번거로움이나
취식문제, 마스크 착용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밤에 잠을 취하기 전 마지막 경우가 나오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내심 그 경우가 우리 가족에게는 제일 괜찮은 경우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됐고,
9시가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결과는 내가 바랐던 대로(?) 였다.



나는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안방에 들어가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우리 14일 동안 마스크 벗고 신나게 룰루랄라
서로 의기투합해서 이 난관을 이겨 내자구요!'

'오히려 좋아!'하고 애써 쿨한 척 웃음을 지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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