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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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가 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나 보다. 그러나 카투사에 떨어지는 일은 내 계획에 없었다.

나는 달리 플랜 B가 없었던 터라

1학년을 마치고 육군 병사로 입대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육군 현역 병사를 지원하기 위해 매일같이 병무청 사이트를 보던 나였다.

 

그러다 우연히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군 학사장교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다

카투사 입대를 위해 토익 점수를 취득했지만

떨어진 사람들 중 상당수가 공군 학사장교로 입대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나는 ‘장교 무엇인지도 몰랐었다. 

영관급 장교가 흔하디 흔한 ‘서든어택’에서도 병장 계급조차 못 달았던 나였다.

그러니 장교니 부사관이니 그게 뭔지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또 누가 계급상 상관인지조차 몰랐었다.

공군 학사장교로 검색을 해보니 SKY 대학 출신자들이 절반이 넘는다느니,

고시 합격자 출신이 대부분이라느니 출처가 불분명한 내용의 글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지금이야 그 내용이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과장이 심하게 된 글이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때는 인터넷 상에 떠도는 글은 모두 ‘팩트’인 줄만 알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장교’하면 괜히 멋있어 보이는 그런 게 있지 않은가.

그래서 4학년 즈음에 시험을 준비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알아보던 중에

공군이 작년부터 ‘예비장교후보생’이라는 제도를 새롭게 시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비장교후보생 제도란 1~3학년 중에서 장교후보생을 미리 뽑는 제도이다.

4학년에 시험을 보게 되면 마음도 조급할뿐더러

혹시라도 낙방할 경우 나이가 찬 상태로 입대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비장교후보생 제도를 활용하면

미리 합격을 받아 둔 상태라 4학년까지 온전히 학업에만 몰두할 수 있다.

게다가 예비장교후보생이란 제도가 아직 충분히 홍보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군 문제 해결이 간절한 졸업반들과 경쟁하기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장려금 지급’이었다.

학사장교들은 특별히 장려금을 받지 않는다.

‘예비장교후보생’들만 성적에 따라 차등적으로 장려금을 지급받게 된다.

상위 20%는 300만 원을, 나머지는 145만 원을 지급받는다.

군 입대를 하는데 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니. 정말 솔깃하지 않은가?

 

나는 예비장교후보생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접수를 했고,

그 흔한 문제집조차 풀어보지 못한 채로 시험장에 들어갔다.

문제가 어렵진 않았지만 미처 풀지 못한 문제들이 많았다.

‘공부를 많이 안 한 내 잘못이지’라고 생각하고 체념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육군 현역 병사로 입대하는 방향으로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복학 일자를 맞힐 수 있는 차수는 모두 극악의 경쟁률을 자랑했다.

혹시 모르니깐 필기 발표일자까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기다렸지만 기대하진 않았던 발표날이 되었다.

정말 뜻밖이었다.

덜컥 합격을 해버린 것이다.

이제 면접만 보면 ‘공군 학사장교후보생’으로 입대를 할 수도 있게 된다.

 

군대에 대해서는 문외한인데 면접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휴가 나온 친구들을 만나면 군대 얘기만 하니깐

그게 싫어서 최근에는 만나지도 않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 친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걸 그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면접은 제대로 준비해서 꼭 붙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날부터 군대나 안보 관련된 면접 예상 질문을 100개 정도 추려서

모범 답안을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다.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부터 ‘전작권 환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평소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던 내용들이었다.

 

그렇게 모범답안 100개를 거의 다 외워갈 무렵,

면접 장소에 대한 문자가 왔다.

면접 장소는 ‘성남비행장’이고 단정한 면접복장으로 시간을 반드시 준수해서 오라는 식의 내용이었다.

드디어 면접날 아침이 밝았다.

버스를 타고 비행장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몸에 맞지도 않는 정장을 입고 걸어가는 사람들은 분명 학사장교 면접대상자들임이 틀림없다.

 

면접 장소에 도착해서 떨리는 마음으로

예상 질문 100개 유인물을 마지막으로 재점검하고 있었다.

면접은 3인 1조로 진행되었고, 면접관 역시 3명이었다.

현역 공군 소령 1명과 대위 2명으로 구성된 면접관들이었다.

 

시간이 꽤 지나고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었다.

나는 두 번째 면접자였는데 하필이면 내가 제일 열심히 외운 ‘전작권 환수’에 대한 질문이

내 바로 앞 면접자에게 간 것 아닌가!

게다가 그 면접자는 내가 외운 답과 99% 일치한 답을 얘기했다.

그 사람도 분명히 다음 카페에서 예상 질문 100개를 받아 봤던 게 분명하다.

 

면접관은 그 면접자의 답변을 듣고 꽤나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도 남은 99개 중 하나를 질문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 놓고 있었다.

그런데 가운데 계시는 소령 분이 ‘장교에 필요한 동물이 뭐가 있을까요?’라고 질문하는 게 아닌가.

 

‘이게 웬 뚱딴지같은 질문이지?’

순간적으로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나는 ‘강아지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그 예시로 ‘군사상 목적으로 기르는 군견’을 들어 얘기했다.

내 대답을 들은 면접관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약간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내 다음 면접자에게

‘OO 씨는 장교에게 필요한 덕목이 뭐라고 생각해요?’라고 질문했다.

 

아뿔싸. 동물이 아니라 덕목이었구나.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덕목’을 ‘동물’로 잘못 알아듣고 전혀 다른 답변을 한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내 질문은 거기서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만회할 방법도 없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그 친구 역시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취미가 무엇이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없습니다.’라고 답하기까지 했다.

 

면접이 모두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그 친구에게 번호를 물어보았다.

왠지 그 친구와 나는 면접까지가 끝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이것도 인연인데 계속 친구로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최종 합격자 발표날이 되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도 잠시, 그 친구 생각부터 났다.

곧장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합격자 발표 난 것 봤냐고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아직 확인을 못했다고 하더니,

잠시 후 한층 고양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는 5분간 전화로 우리의 합격을 자축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훗날 우리가 같은 소대원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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