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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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교육사 정문에서 차로 15분 정도 이동하니

어느덧 장교교육대대(이하 장교대)가 보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장교대 마스코트라고도 할 수 있는 조국은 그대를 믿는다.’ 구령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사진을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곳곳에서 빨간 모자를 쓴 훈육관이 돌아다녔다.

그들은 웃으면서 후보생들의 부모님에게 장교대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었다.

분명히 빨간 모자를 쓴 사람들이 ‘악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디에도 악마 같은 사람들은 없었다.

나는 ‘그냥 겁 주려고 쓴 얘기겠지.’하고 그들의 선한 인상에 안심할 수 있었다.

 

대강당에서는 누군가가 부모님들에게 당신의 아들•딸들이 받게 될 훈련과

기타 안내 및 행정사항에 대해 프레젠테이션하고 있었다.

누군가 ‘목욕탕도 있어? 요즘 군대 좋아졌네.’라며 혼자 조그맣게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목욕탕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다만 목욕탕이 있다고 했지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는 안 했다.

나는 3개월 훈련 중 딱 한 번밖에 못 가봤다.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는 부모님들에게 직접 우리가 자게 될 숙소와 기타 복지시설들을 보여주었다.

세탁기도 있고, TV도 있고, 심지어 셋톱박스까지 설치되어 있어 다시 보기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자녀분들이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라는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기수마다 다르긴 한데, 우리 기수 때는 임관하기 직전 즈음에나 이용 가능한 복지였다.

 

모든 소개가 끝나고 이제 정식으로 입영하는 ‘입영행사’만 남았다.

입영행사는 훈련단 대연병장에서 진행되었다.

일반적인 학교 운동장과 거의 비슷한 구조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 가족은 의자에 앉아서 행사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잠시 후 제 OOO기 학사사관후보생 입영행사를 거행하겠습니다.

전 후보생들은 대연병장으로 집결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방송이 울렸다.

나는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간단한 포옹 후 내려가려고 했다.

아버지와 큰누나, 그리고 어머니와 포옹 후 떠나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가방 놓고 가. 아직 가는 거 아니잖아.’라고 얘기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입영행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줄 아셨나 보다.

나는 ‘아니에요. 행사 끝나면 바로 가는 거예요.’라고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그제야 상황을 인지하고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안고 가. 몸 건강해.’라는 말과 함께 눈물을 훔치셨다.

나도 마음으로는 울컥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씩씩하게 인사하며 내려갔다.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후보생 대표의 선서를 끝으로 정식 입영 신고를 했다.

그리고 그 후보생 대표의 아버지가 후보생 가족 대표로서 직접 써온 편지를 읽어주며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굿바이 솔저.’라는 기괴한 구호를 외치고, ‘부모님께 잘 다녀오겠습니다.’ 큰절을 올렸다.

 

이제 진짜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

나는 부모님을 향해 손을 크게 흔들며 ‘잘 다녀오겠습니다.’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빨간 모자를 쓴 훈육관의 인솔로 장교대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차를 타고는 금방이었는데 걸어가려니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장교대에 도착해서는 가소대 및 숙소 배정이 진행되었다.

정식 입단을 하기 전 1주일 동안은 각종 행정처리 및 체력검정 등 3차 전형이 진행되는데,

그 기간을 ‘가입교’ 기간이라고 한다.

이 가입교 기간 동안 생활할 임시 소대가 바로 가소대이다.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소대를 배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예비장교후보생’만 따로 1개의 소대를 구성했다.

 

안내받은 숙소에 들어가 간단히 짐을 풀고 방원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숙소는 4인 1실로 2층 침대 2개가 구비되어 있었다.

침대에 앉아서 잠시 쉬려던  찰나에

‘전 후보생은 복도에 붙어 있는 부착물을 보고 각자 자기 소대를 확인하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울렸다.

나도 내가 속한 소대를 확인하기 위해 복도에 나갔다.

 

‘오, 대박!’

 

우리 소대에 반가운 이름이 두 개나 있었다.

한 명은 나와 같이 면접을 봤던 친구였고, 또 다른 한 명은 과 동기 형이었다.

나는 명단을 확인하자마자 그들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인사를 나눴다.

나는 군대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아직 힘든 건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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