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728x90

친구들과 간단한 근황 토크 후 다시 방에 들어왔다.

방에서는 여전히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

누군가 침묵을 깨고 '다들 나이가 어떻게 돼요?'하고 물어보았다.

나를 제외한 3명은 모두 스물다섯 살이었고, 나만 스물네 살이었다.

나는 '형들, 제가 막내니깐 편하게 말씀하세요.'라고 이야기했다.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한 것뿐인데,

'그래? 그럼 내가 아래층 침대 쓸게.'라며 내 침대 결정권을 박탈시켜버렸다.


우리는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끼리는 어느 정도 친밀감이 형성되었고,

웃고 떠들다 보니 구대에 왔다는 생각보다는 '캠프'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 후보생은 식당 앞에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울리고서야 우리의 수다는 끝이 날 수 있었다.


가입교 기간에도 개인적인 행동은 절대 금물이다.

식사를 할 때도 각 소대별로 정렬을 하고,

인원 파악이 완료된 후에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인원들도 각자 방에서 어느 정도 친해져서 나온 듯했다.

식당 앞에서 정렬해 있는데, 다들 웃고 떠들고 난리도 아니었다.

빨간 모자를 쓴 훈육관은 우리의 행동에 다소 불만인 듯했으나, 달리 제재를 하진 않았다.

그러면서 '뒤로 번호'를 하며 인원 파악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하나, 둘, 열일곱, 열일곱!', '다시.’

‘하나, 둘,..., 열넷,..., 저기 번호 좀..', '다시.’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데 실수 투성이었다.

아마 긴장을 안 하고 있다 보니,

아니 틀려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대충 하는 듯했다.

보이진 않았지만, 훈육관의 선글라스 너머에서 눈빛이 이글대고 있었다. 

'너네두고 보자.' 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장교대의 식사는 기대 이상이었다.

누가 군대 짬밥이 맛이 없다고 했는가.

이 정도 퀄리티의 식사라면 사회에서 '5000원'정도는 기꺼이 지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는 다시 방에 들어가서 집에 몰래 보낼 편지를 쓰며 다음 행정처리를 기다렸다.

가입교 기간 동안에는 인성 검사, 혈액 검사, 혈압 검사 등 각종 검사를 실시하고

혹시 문제가 발생한 후보생들에 한해서 재검을 실시한다.

또한 이 기간에 '측신'을 하는데,

내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

이상한 흰색 수영모와 흰색 삼각팬티만 입고 신체 치수를 측정한다.

아마 연예인이 와서 한다고 해도 굴욕을 피하긴 쉽지 않을 거다.

여기서 측정한 치수에 맞게끔 보급창고에 가서 전투복과 전투화 등을 보급받는데,

이때 받는 새 전투복은 주말에 종교활동을 참석할 때만 입을 수 있다.

이외 훈련할 때는 항상 '재활용 전투복'을 입게 된다.

흙먼지 구덩이에 나뒹굴었던 전투복을 입고

외부인이 참석하는 종교활동에 갈 수는 없기 때문에,

늘 말끔하게 새 전투복과 새 전투화 착장으로 종교활동을 하러 가게 된다.


가입교 기간 동안 맛있는 식사와, 편안한 숙면을 보장받으면서

흔히들 ' 군대 체질인가 봐.'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아직 훈련은 시작도 안 했고,

가입교 기간에는 민간인 신분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채.

 

그렇게 가입교 기간이 끝날 무렵이 되면, 3차 관문인 '체력 검정'을 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과정에서 집에 돌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공군 학사장교가 되기 위해 4년간 열심히 달려왔겠지만,

아직 1.5km를 더 달려야 비로소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정식 후보생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 악물고 뛰면 1.5km 정도는 7분 44초 기준 내에 반드시 통과할 수 있을 테니

여기까지 온 만큼 꼭 이겨내길 바란다.


불과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가 있는데,

재검정 역시 과락하면서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갈 사람은 모두 떠났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공식적인 훈련 일정이 시작되지만

내일까지는 가입교 기간이라는 생각에 안심을 하고 샤워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빨간 모자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훈육관이

샤워장에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난생처음 들어보는 데시벨의 사자후였다.

 

'방금 복도에서부터 속옷만 입고 샤워장에 들어왔다. 튀어나와!!’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