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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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한 상태로, 아니 거의 반죽음 상태로 방에 들어갔다.

이제 복도에서의 행동도 모두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상 방에만 숨어 있어야겠다.' 하던

찰나에 또 사자후가 들리기 시작했다.

'누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어, 다 복도로 튀어나와!'

또다시 복도에서 2차전이 시작되었다.

비좁은 장소에서 수십, 수백 명이 엎드리자

손가락이 밟히기도 하고 머리가 걷어 차이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 신음소리와 비명소리가 남발했다.

훈육관은 '누가 동기 손을 밟아!' 하면서 점호장으로 5분 안에 집합하라고 소리쳤다.

또다시 점호장에서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불과 10시간 전에 이곳에서 고통받았었는데

아직도 오늘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니.

오늘만큼 긴 하루가 또 있을까.

그렇다면 얼른 이곳을 탈출해야겠다.

정신없이 구르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식당으로 집합하라는 방송이 울리고 모두 식당 앞에 정렬해있었다.

훈육관이 시크한 모습으로 '뒤로 번호.'를 요구했다.

'뒤로 번호 하나! 둘! 셋! 셋!'. ‘셋 누구야! 셋 누구야! 다 엎드려.'

우리는 또 엎드렸다.

확실한 건 오늘 하루 동안 두 발로 서 있는 시간보다

네 발로 서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또 한 동안 기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밥을 먹여야 훈련도 시킬 수 있지 않겠나.

긴 동기 부여 끝에 식당 출입을 허용해주었다.

(이곳에서의 동기 부여는 사회에서의 동기 부여와는 확연히 다르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라고 모든 후보생들이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방금 소리 냈다. 튀어나와.'

아, 아무 소리도 안 난 것 같은데.

환청이 들리나?

'안 튀어나오지? 양심 팔지 마. 다 엎드려!’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선한 인상의 사람들이었는데,

'악마'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저 악마들은 우리를 '인간적'으로 싫어하는 것 같다.

밥 먹는 내내 엎드렸다가, 일어섰다가 하다 보니 밥맛이 뚝 떨어졌다.

또 이곳저곳에서 '악!!!' 비명 소리가 들리니깐 더욱더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잠에 들기 전까지 또 몇 차례의 동기 부여를 받았다.

이제 눕기만 하면 곯아떨어질 것 같다.

이제 막 잠에 들 즈음에

‘혹시 자진귀가를 원하는 후보생은 1층으로 내려와서 용무 볼 것.'이라는 내용의 방송이 울렸다.

집에 가고 싶어 미치겠지만, 하루 만에 모든 걸 포기하고 집에 갈 수는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공군 장교 훈련받으러 갔다고 실컷 자랑하고 다니셨는데,

지금 집에 돌아가면 차마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다.

눈 한 번 감았다 떴는데

'저벅 저벅 저벅' 군화 발소리가 방송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명 '저벅가'라고 불리는 기상나팔이었다.

단잠을 깨는 소리에 짜증이 났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제의 그 사자후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

'점호장으로 튀어나가!'

오늘도 역시나 네 발로 걷는 동물이 되었다.

사람은 분명히 두 발로 걷는 동물인데,

여기서는 왜 네 발로만 걷게 하는지 슬슬 짜증이 난다.

그러다 문득 점호장에 집합한 인원들을 보았는데

'어제보다 꽤 줄은 것 같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훈육관 한 명이 마이크로폰을 잡고 이야기했다.

 

'어젯밤에 10명이 자진 귀가 신청했다.

아직 안 늦었으니깐 지금이라도 자진 귀가 신청하길 바란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집에 가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 같다.

뭐만 하면 '집에 가! 누가 못 가게 하냐?'라고 하면서 빈정대곤 한다.

그들의 말은 사실 틀린 게 없다.

우리를 집에 못 가게 하지 않고 오히려 집에 가는 걸 장려하고 권장한다.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길 간절히 기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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