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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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부터 드는가. 짜릿함? 쾌감? 하지만 나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나는 '사격'하면 두려움부터 떠오른다. 다른 말로, 과도한 안전 과민증을 앓고 있는 이른바 '걱정인형'이라고 할 수 있다. '혹시 사격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발생한 '군대 총기 사고'에 관한 기사는 모조리 읽고 입대를 했던 게 바로 나라는 인간이다.

나에게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사격'이 임관 종합평가 중 하나의 항목인 것이 못 마땅했지만, 전쟁을 준비하는 군인이라면 마땅히 총을 쏠 줄 알아야 하다는 사실에는 조금의 이견도 없다. 그냥 나라는 사람이 '쫄보'라는 게 한스러울 뿐.

사격장에 가면 원래도 성격이 불같았던 '훈육관'들이 한층 더 난폭해진다. 그 전이 '불'이었다면 사격장에서의 그들은 '마그마'라고나 할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른 훈련에서 사고가 날 경우 '생명'에 직결될 정도의 부상이 드물지만 '사격 훈련'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격 훈련에서 사고가 날 경우 그대로 '사망'이다.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후보생들의 정신 상태를 단단히 무장해주어야 한다.

첫 사격 훈련이 있었던 그 날에도 훈육관들은 후보생들을 쥐 잡듯이 잡고 있었다. 나는 첫 사격을 앞두고 온갖 쓸데없는 걱정 탓에 불안감이 고조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훈육관들의 샤우팅이 더해지면서 긴장감이 최고조 상태가 되었다. 이 상태로는 사고가 날래야 날 수가 없게 된다. 더군다나, 총기에 '안전 고리'를 장착하는 순간 사고 발생률은 '0%'에 수렴하게 된다. 이렇게 '사고'에 대한 두려움은 불식되었지만, 태생적인 '겁'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영점 사격'을 진행한다. 영점 사격은 기록 사격을 하기 전에 조준점을 일치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따라서 50m, 100m 거리에서 진행하는 기록 사격과 달리 영점 사격은 25m라는 초근거리에서 실시하게 된다. 10발이 다 들어가야지 탄착군을 확인하여 영점을 맞출 수 있다는 얘기이고, 가까운 거리에서 쏘기 때문에 원래라면 10발이 다 들어가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내 영점 사격 결과는 처참했다. 기록지를 확인했는데 고작 2발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나머지 8발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아마 25M 거리에서는 10발을 넣는 것보다 못 넣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그나저나 영점 기록지에 있는 2발로는 영점이고 뭐고 조절을 할 수가 없는데, '사격은 역시 내 길이 아닌가.' 두려움이 엄습하던 날이었다.

그렇게 첫 영점 사격을 마치고 다음 기록 사격을 하기까지 수십, 수백 번, 원인을 분석해보았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쫄지 마!'였다. 사격을 할 때마다 뻗어나가는 탄환을 끝까지 추적하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아버린 게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눈을 감게 한 주범은 총기가 뿜어내는 '굉음'이었다. 그 소리는 내가 방아쇠를 당길 때뿐 아니라 옆 사람이 방아쇠를 당길 때도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하지만 문제점을 찾은 것과,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다시 사격장에 올라가 사격을 했을 때도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공포심’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망상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과녁을 '적군'이라고 상상하고 내가 쏘지 않으면 저 과녁이 나를 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저놈을 맞추지 못하면 당장 내 목숨이 위태로운데 어찌 눈을 감고 쏠 것이며, 어찌 총소리에 화들짝 놀랄 것인가. 당장 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런 생각으로 사격에 임하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만발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에이, 설마 그렇게 되겠어? 허언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단언컨대 '두려움 제거’이다. 조준을 하는 방법이야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지만 두려움을 없애지 못한다면 결코 목표물을 맞힐 수 없다.

영점 사격 때 두 발을 맞힌 후보생이 훗날 기록 사격 때 일반 사격 야간 사격, 방독면 사격 모든 사격에 있어서 특등 사수가 될 수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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