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728x90

중국 사회가 마약을 유달리 혐오하는 이유 (1840 아편전쟁)

중국은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이 무자비하기로 유명하다.

운반량이나 죄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고 사형까지 선고될 수도 있고,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감형이 되지 않아

외국인이 사형됐다는 뉴스도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아편전쟁의 영향 때문이다.

제1차 아편전쟁 (1840 ~ 1842)

당시 서양에서는 중국 물품들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중국의 비단, 차, 도자기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반해

정작 중국에서는 서양 물건들이 경쟁력이 있질 않았다.

특히, 영국에서 차를 마시는 문화가 유행하게 되면서

중국산 차가 대량으로 필요해졌고

계속된 수출초과로 영국의 막대한 은이

중국에게로 넘어갔다.

이에 따라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수출하면서

무역적자를 해소하고자 했다.

이렇게 영국의 아편은 중국 사회 전반에 유입되어

육체노동을 하는 하층민들부터

고위 관료들까지 아편에 중독되게 된다.

중국 사회 전체가 마비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때, 중국 정부에서는

'임칙서'라는 관료를 내세워

이 사태를 조정하고자 했고

임칙서는 강력하게 아편을 단속하며

외국 상인들로부터

모든 아편을 몰수하여

바다에 뿌려버리게 된다.

영국은 이를 빌미로 원정군을 이끌고

광동 앞바다에 도착해 선전포고를 한다.

대포와 거대함선을 갖춘 영국에 비해

중국은 재래식 범선에 불과했고

상대가 될리 없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중국이었지만

신식 무기 앞에서 초라해졌다.

그 당시 중국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잘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당시 양방이라는 장군은

영국군의 대포가 주술사들의 주술에 의한 것인데,

주술사들이 여인의 오줌을 싫어하기 때문에

성벽에 여인의 오줌을 발라 놓고

대포 방향으로 요강을 두면

대포의 정확도가 급격히 떨어져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믿는 자가 있을리 만무했지만

영국군의 강력함을 목격한 관리들은

어느 누구 하나 나설 생각이 없었고

그 상황에서 어느 머저리가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발 벗고 나섰으니..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나서느니

그 머저리 같은 발언에 동조하는 편이 낫을 테다.

당시 중국은 '청나라 왕조'

동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등에서

패권을 행사하는 대국이었다.

실제로는 백련교도의 난이나 태평천국 운동 등으로

기력이 쇠퇴할 대로 쇠퇴한 청나라였지만

'에이, 그래도 청나라인데.

썩어도 준치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청나라가

근대식 신형 무기 앞에

무릎을 꿇어 버린 것이다.

가장 큰 패인은

'아편'이었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모두 게을러졌고,

사고가 마비되고

더 나아가

중국 사회 시스템 모두가 마비되었으니깐.

영화 말미에 자아비판 도중

아편이야기를 하며

인민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빨아 먹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극중 디에이(데이)가

고통스럽게 몸 부림치면서

아편을 끊으려고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인들이 '마약'에 관해서라면

그 처벌이 무자비하고

학을 떼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