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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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05:22, 05:23••• 기상 시간이 아니다. 모든 출근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이다. 임관 후 부대에 전입한 지 이제 막 3일 차가 된 '갓 소위'라 모든 게 어색하고 힘들지만, 그중에서도 새벽 출근 시간이 가장 괴롭고 서럽다. 왜 이렇게 일찍 출근하냐고?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올라온 보고서들을 읽고 요약해서 아침 보고자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잘 정돈된 8장짜리 PPT로 새로 만들어서. 그 과정이 익숙지 않은 미숙한 초급 장교로서는 이 정도의 부지런함으로도 부족한 능력의 간격을 메우기 쉽지 않다.

보고자료 작성을 시작한 지 2시간 즈음 흘렀을 때, 기상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내 동기들은 지금쯤 일어나서 씻을 준비를 하겠지?' 부러움도 잠시, 이내 마음을 다잡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자료 작성에 박차를 가했다. ‘자료 얼른 올려주세요.' 아침 보고를 주관하시는 과장님의 독촉 전화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직 참고 사진도 못 올렸는데. 간신히 자료까지 업로드하고 나서야 비로소 '휴.'하고 숨을 돌렸다. 하지만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혹시 2페이지의 OO, 오타 아니니?' 처장님의 전화다. 아뿔싸, 급하게 올린다고 글자와 글자 사이에 엉뚱한 숫자가 하나 들어간 것이 아닌가. '죄송합니다. 얼른 수정하겠습니다.'라고 재빠르게 수정을 약속드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모든 부서의 보고자료를 다 삭제하고, 다시 업로드하지 않는 한 수정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렇게 2% 부족한 보고자료로 아침 상황보고는 끝이 났다. '3시간 동안 작성한 자료였는데, 좀만 더 신경 쓸 걸, ' 아쉬움이 남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노릇이다.

'08:30'. 체감상 점심시간 정도는 족히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아침이다.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침 행사를 지휘하기 위해 부리나케 뛰어나간다. 지금 막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반, 얄미움 반, 만감이 교차한다. '하나, 둘, 셋, 넷…' ‘공군 핵심가치 구호를 외치면서 끝내겠습니다. 도전•••' 아침 행사가 끝나고 나서 얼른 사무실에 뛰어 들어가 아까 미처 작성하지 못한 대장들을 작성한다. 아까와 같은 사소한 실수 속에서 보안에 구멍이 나기 시작하는 거니깐.

'17:30'. 퇴근 시간이 되었지만, 앞으로의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공부가 불가피했다. 물론 내 공부라는 생각에, 야근을 올리진 않았다. 어떤 일들인지 글로만 읽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과연 이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지레 겁부터 나기 시작했다.

'21:00. 방에 도착해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내일 아침도 거를 게 뻔해 저녁도 늦게 먹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벙커에 있어 휴대폰을 확인하지 못하다 보니 카톡 대화방이 상당히 시끄러운 상태였다. 밀린 대화방을 읽다 보니 어느덧 ‘22:30'이다. 지금 바로 잠들어도 6시간 반밖에 못 잔다니. 하지만 적응해야겠지. 이제는 '일상'이 돼야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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