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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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 첫째 날을 마무리하고 샤워를 끝냈다.

분명 샤워를 하면서 몸 구석구석을 씻겨냈는데도

귓구멍을 후비면 황토색 흙먼지가 묻어 나온다.

그리고 내 몸 중 쑤시지 않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몸 어디를 눌러도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니 누르기는커녕 조금 움직이기만 해도 흠칫 놀라곤 했다.

온몸이 성치 않은 중에도 자기 전에 기도하는 걸 잊지 않았다.

내 기도의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내일은 비 오지 않게 해 주세요.’

어젯밤까지만 해도 비가 조금씩 내렸었는데,

아침이 되니 거짓말같이 비가 그쳤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젖어 있었던 ‘유격 랜드’의 기구들이 모두 말랐는지가 관건이었다.

만약 기구가 조금이라도 젖어 있다면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모든 기구 훈련을 중단할 테니깐.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어제 했던 유격 체조를 무한 복습할 게 뻔하다.

‘유. 격. 유. 격. 유격대! 유격대!’

어제 아침과 동일하게 유격 뜀걸음이 진행되었다.

그래도 어제 몸이 닳도록 체조를 배웠기 때문에

유격체조를 숙지하지 못해서 벌을 받는 일은 없었다.

유격 뜀걸음을 뛰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제발, 기구가 다 말라있기를.’

뜀걸음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한 소대장이 유격 랜드를 확인하러 갔고, 얼마 후 유격 랜드 입장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내 간절한 기도가 이뤄졌다는 생각에 굉장히 들뜬상태로 유격 랜드까지 유격 뜀걸음을 하며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발밑에 있던 돌부리를 미쳐 보지 못하고, 발목이 꺾임과 동시에 크게 넘어졌다.

동기들은 ‘괜찮아?’ 내게 물었고, 나는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그대로 발목이 삐어 버렸고, ‘유격을 포기해야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오늘 기구들은 상체 근력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것들이었다.

문제는 내일이었다.

내일은 고공 기구 훈련들이 많았고, 자칫 잘못하면 큰 부상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 나는 일단 궁여지책으로 발목보호대 두 개를 부상당한 발목에 착용했다.

그 상태로 군화를 신으니 혈액순환이 잘 되진 않았지만, 통증은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이 정도 통증이면 유격훈련을 열외 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부상은 급하게 조치했지만 내 태생적인 ‘겁’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놀이공원에도 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이유는 하나다.

나는 높은 곳이 무섭다.

롯데월드에서 아이스링크장을 관망하는 난간에도 잘 못 기대고,

심지어 투명 엘리베이터도 잘 못 타는 정도의 겁쟁이다.

그래서 처음 진주 교육사에 왔을 때 유격 랜드를 발견하고는

‘와, 난 저거 절대 못해.’라고 확신(?)했다.

특히 외줄 타기의 경우 높이가 11M에 달하는데,

저건 나 같은 위인은 절대 할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군인’은 가능했다. 군인에게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

손발이 덜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흐르는 와중에도

모든 고공훈련을 빠짐없이 마칠 수 있었다.

나중에 전역하면 놀이공원 갈 수 있겠다고?

그렇지 않다. 그땐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니깐.

그렇게 모든 유격훈련을 마치고 생활관에 돌아왔다.

샤워를 하기 위해 군화를 벗고 두 겹짜리 발목보호대를 제거했는데,

복숭아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발목이 부어 있었다.

그래도 내일이면 2박 3일간의 특별외박을 나갈 수 있는데, 뭐가 문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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