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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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로 3박 4일간의 모든 유격 훈련이 끝났다.

아직 꼭두새벽임에도 너나 할 것 없이 일찍 일어나 침구류를 정리하고 있다. 나도 정리를 마친 후에 침대에 누워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인 2박 3일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았다. 말이 2박 3일이지, 사실상 진주에서 집까지 걸리는 왕복 시간을 제외하면 1박 2일이나 다름없었다. 어젯밤에 동기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복귀 전 먹어야 할 음식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많은 것들을 다 먹을 순 없을 것 같아서 기상나팔이 울리기 전까지 최고의 버킷리스트를 추려내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기상나팔 소리가 울리자마자 모든 후보생들은 재빠르게 점호장에 집합했다. 이렇게 빨리 집합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아침 행사를 마치고도 전광석화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해산했다.

우리의 간절함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드러났다. 장교대 아침 식사 정도면 꽤 먹을 만한 수준이지만, 괜히 군대 짬밥으로 배를 채우고 싶진 않았다. 밖에 나가서 먹어야 할 음식들이 산더미인데. 무엇보다 군대밥을 먹기 위해서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국민의 세금으로 지은 밥을 아예 거를 순 없어서 한 숟갈만 담았다. 모든 후보생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순식간에 밥을 해치웠고, 생활관 청소를 재빠르게 마친 뒤 점호장에 집합했다.

‘너네 원래 이렇게 빠릿빠릿했어?

평소에 이렇게 하지 그랬냐.'

오늘만큼은 소대장들도 그렇게 순박해 보일 수가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군기가 바짝 든 체한다. 만에 하나라도 동기 부여를 받게 된다면, 내 금쪽같은 특별 외박 시간이 줄어드니깐.

내가 탄 버스는 고속버스터미널을 향해 갔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렀을 땐 계획대로 소떡소떡과 호두과자를 먹었다. 그렇게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대략 2시였다. 그리고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니 3시 반이 조금 넘었다.

'삑. 삑. 삑. 삑’

도어록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자 온 가족이 나를 반겨주었다. 어머니는 내 몰골을 보고는

‘어떡해..’라며 안타까워하셨다.

당시 나는 입대하기 전보다 6KG 이상 빠져있었고, 피부는 새까맣게 탄상태였다.

나를 본 누나는 '마이콜'이라고 깔깔대며 놀렸다. 몸은 삐쩍 말랐고, 피부는 새까맣고, 영락없는 '마이콜'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온다며 아침 일찍부터 해물탕, 잡채 그리고 소불고기 등 9첩 반상을 준비해 놓으셨다.

원래 내 계획은 치킨, 피자, 햄버거를 동시에 시켜 먹는 거였는데,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나중에 동기들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기들의 특별외박 첫끼도 대부분 불고기와 찌개였다고 한다. 부모님 마음은 다 비슷한 것 같다.

밥을 먹고 가족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휴대폰을 꺼내 밀린 연락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잘 다녀와라, 건강해라' 등 입대 직전에 온 연락들이었다. 연락 확인 후에는 SNS로 친구들의 근황을 보는데, 자유인들의 삶이란 참 행복해 보였다. 불과 두 달밖에 안 지났는데도 그들은 SNS에 수많은 기록을 남겨 놓았다. 내가 남긴 거라곤 귓속 흙먼지밖에 없는데.

저녁에는 할아버지 댁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저녁 식사를 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두 달 동안 할아버지가 더욱 연로해지셨다고 느껴져 마음이 안 좋았다.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와서 밀린 예능프로그램을 보려고 TV를 틀었다. 그런데 별안간 잠이 쏟아졌다. 시계를 보니 장교대에서 완전 소등을 하는 밤 10시였다. 오늘 밤 할 일이 산더미인데도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소파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2개월간의 규칙적인 생활이 이렇게 무섭다.

다음날 오래간만에 늦잠 좀 자나 했는데, 눈이 떠져버렸다. 새벽 5시 반이었다. 일찍 일어난 김에 집 앞 공원에서 아침 뜀걸음을 실시했다. 입대 전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자발적인 달리기라니. 달리기를 마치고는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서 두 달 동안 묵은 때를 벗겨냈다. 목욕을 마치고 나왔는데도 귀에 흙먼지가 남아 있는 느낌이다. 기분 탓인가?

(중략)

눈을 떴더니 어느덧 진주로 복귀하는 버스에 타 있었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입대할 때 보다 훨씬 더 가기 싫었다. 입대 전에는 막연한 공포였는데, 지금은 2개월 간 톡톡히 맛 본 확실한 공포니깐.

2박 3일, 아니 2.3초의 짧은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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