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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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외박을 다녀오고부터는 조금씩 ‘임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특별 외박을 기준으로 그 전은 ‘군인화’ 단계, 그 이후를 ‘장교화’ 단계라고 하는데,

장교화 과정부터는 기존에 있던 제약도 어느 정도 풀리면서 훈련을 받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물론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만큼 그에 따른 ‘책임’이 막중해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늘은 임관 전 마지막 체력검정 평가를 진행했다.

체력검정은 꽤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진행되었다.

강한 비가 쏟아졌고, 그 비를 맞으면서 달리기를 해야 했다.

그런데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말이 있지 않나.

정확히 그런 상황이었다.

진주의 5월은 무척이나 뜨겁다.

이런 무더위 속에서 달리기라도 하면 금방 힘이 빠져버리곤 했다.

그러나 쏟아지는 빗속에서 달리기를 하니 시원함을 만끽하면서 달릴 수 있었다.

나는 기존에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는 각각 72개, 86개로 이미 특급을 달성했었는데,

오직 3KM 달리기에서는 ‘1급’의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날 달리기에서 12분 10초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체력검정 올 특급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게다가 사격도 일반 사격, 방독면 사격, 야간 사격 모두 9발을 명중시켜

특등사수(전 사격 90% 이상을 명중한 사수)였던 나는

‘최강전사 선발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었다.

조금 유치한 이름과는 다르게

‘최강전사’는 남녀 성별을 막론하고 모든 후보생들이 갈망하던 칭호였다.

최강전사 선발대회는 ‘기본 군사훈련단장’이 참관하는 가운데

앞서 언급한 자격을 충족하는 10명의 후보생들이 출전하여 서로의 체력을 겨루는 대회다.

여기서 선발된 최강전사는 이후 임관식 때

여러 내빈과 부모님들이 보는 앞에서 영예의 최강전사상을 수여받게 된다.

최강전사라는 타이틀이 뭐가 중요하랴.

임관식에서 부모님이 당신의 아들이 상 받는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뿌듯해하실까.

그 생각을 하면서 출전하는 게지.

체력검정 평가가 있고 얼마 뒤 방송으로

최강전사 대회에 출전하게 될 후보생들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막연하게 내 출전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방송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최강전사 대회에 출전한다니.

첫 소대 배정 후 같은 방을 썼던 친구들과 얘기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 나를 제외한 3명은 모두 사회에서 운동을 즐겨했던 친구들이라

서로 자기가 최강전사할 거라며 투닥거리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상대적으로 ‘멸치’에 가까웠던 내가

‘최강전사, 내가 나갈 건데?’라고 이야기하면 모두가 깔깔대며 웃었다.

내 얘기를 들은 그들은 ‘그래, 너 해라.’하면서 나를 깔보며 비웃었었다.

물론 나도 나갈 생각도 없으면서 그들을 웃게 해 줄 요량으로 그렇게 얘기했던 거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되었다.

그 친구들 역시 모든 체력검정 종목에서 특급을 달성했지만,

나처럼 ‘특등사수’의 조건을 충족시키진 못해서 최강전사 선발대회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쟁쟁한 그 친구들을 모두 제치고 ‘멸치 후보생’이었던 내가 그들을 대표해서 출전하게 되었다.

인생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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