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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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에에에에에에엥'

요란한 비상 사이렌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어 비몽사몽 상태로 군장을 싸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반이었다. 등화관제를 실시하고 있던 탓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 가는 대로 위장크림을 대강 바르고 헐레벌떡 군장을 챙겨서 점호장으로 이동했다.

5월 초여름 날씨를 기대했건만, 꼭두새벽이라 그런지 날씨가 꽤나 차게 느껴졌다. 오히려 잘된 건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 날씨라면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서 걷는 것보다야 훨씬 나을 테니깐.

행군(야외 종합훈련)은 2박 3일 동안 완전군장 상태로 약 100KM의 코스를 걷는 훈련이다. 단순히 걷기만 하는 건 아니고, 행군 중간중간에 방독면을 써야 하는 상황이나 공중 지향사격을 해야 하는 상황 등 각종 상황이 부여되기도 한다. 행군이 만약 100KM 내내 평지로만 이뤄진 코스라면 이미 체력이 올라올 대로 올라온 우리에겐 그저 산책 정도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임관 전 최종 보스인 행군이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

첫째 날 행군 코스는 맛보기에 불과하다. 앞서 말했듯이 꼭두새벽에 행군을 함으로써 더위와의 불필요한 싸움을 피할 수 있으며, 울창한 나무와 꽃들을 바라보면서 걷다 보면 마치 산책을 나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게 첫날 행군을 마치고 생활관에 돌아오면 '할만한데? 내 체력이 이렇게나 많이 늘었나?'라며 오해하는 후보생들이 한 둘이 아니다. 나는 심지어 행군에서 돌아온 뒤 체력이 부족한 동기를 위해 400인분의 설거지를 대신해주기도 했다.

 

허나 문제는 다음 날부터였다. 이튿날 행군 코스는 진주에서 사천까지 걸어가는 코스로 약 33KM 거리였는데, 행군 시작부터 갑자기 어제의 피로도가 부메랑이 되어 한꺼번에 돌아왔다. 팔, 다리, 어깨, 허리 등 쑤시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었고 특히 발바닥에 물집도 크게 잡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항문'의 쓰라림이었다. 30KM가 넘는 거리를 계속해서 걷다 보니 엉덩이 속살끼리 뜨거운 마찰을 일으키면서 급기야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

나는 항문의 고통 속 사경을 헤매면서 간신히 사천기지에 도착했다. 사천에 도착하면 곧바로 진주에 돌아갈 줄 알았는데 돌아가기는커녕 갑자기 끝도 보이지 않는 해안선을 걷기 시작했다. 마치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 길을 헤매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끝이 없는 길을 걷다가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 즈음에 다시 사천기지 정문에 도착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절망적인 생각에 낙담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주까지 우리를 태워주러 온 버스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꼬박 하루가 걸려 온 거리인 만큼 가는 길도 꽤 걸리겠다 싶어 잠을 청해보려 했는데 30분도 안되어 진주에 도착해버렸다. 반나절 이상 걸린 고행의 순례길이 버스로는 30분 거리라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생활관에 돌아와서도 항문의 쓰라린 고통 때문에 나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대망의 3일 차 행군 날이 밝았다. 오늘 훈련이 임관 전 마지막 훈련이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행군은 공포의 산악코스로 진행된다. 왜 공포스럽냐 하면, 맨몸으로도 타기 힘든 험준한 산악지형을 약 20KG의 완전군장 상태로 등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늘 아침부터 얄궂은 비까지 내리고 있어 산악행군의 난이도가 한층 더 높아졌다. 사실 산에 오르기 전 입구에 있는 계단을 발견하고는 안심이 되었었다.

나는 계단이 정상까지 이어지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초입 50M 이후부터는 계단이 사라졌다. 이내 '여기가 과연 등산로가 맞긴 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등산객들이 다니는 길이라기엔 지형이 너무 가팔라 자칫 잘못하다간 실족하여 추락할 것만 같았다. 게다가 비까지 퍼붓고 있어 길이 상당히 미끄러운 상태였다.

수백 명의 인원이 1열로 등산을 하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 올라가는 사람이 예고 없이 멈추기라도 하면 뒤에 있던 사람들은 충돌 또는 추락으로 인한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어 긴장의 끈을 절대 놓을 수 없었다. 세 달간 죽어라 훈련을 받고 이제 최종 관문인 행군 훈련만 남았는데 여기서 다쳐서 돌아갈 순 없지 않은가. 아니 집에 돌아가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여기서 떨어졌다간 삶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다. 그렇게 온몸에 긴장을 가득히 한 상태로 정상까지 올라갔더니 근육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정상에서 잠시 포토타임을 가진 뒤 소대장들이 이야기했다. '내려갈 때가 훨씬 위험하니까 각별히 조심하도록.'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힘들게 올라왔으니 내려가는 길은 한결 수월하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었다. 내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20KG 완전군장과 내 손에 움켜쥐고 있는 3KG의 총기를 간과해버렸다. 나는 이 긴 행렬 속에서 보조를 맞추어 내려가고 싶은데도 23KG의 무게가 내 걸음걸이를 재촉한다. 서둘러 내려가고 싶어 하는 23KG의 그놈과 내려가지 않으려는 내 두 발 사이에서 벌어지는 실랑이 때문에 하산을 하고서는 온 몸이 축 늘어져 버렸다.

그렇게 3개월 훈련의 마지막 꽃인 '행군'을 끝으로 모든 훈련이 끝이 나버렸다. 지난 시간의 아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특내기간, 사격훈련, 화생방 훈련, 유격훈련, 그리고 오늘 행군 훈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훈련들을 모두 극복해냄으로써 '알소위'계급장의 '알'을 깨트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특기'를 선정하고 '임관식'만 거행하면 진정한 '소위'장교로 거듭날 수 있다.

길고도 길었던 3개월의 훈련 여정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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