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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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임관식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구두를 신고 임관식 사전 연습을 진행하다 보면
'전투화'가 얼마나 편한 신발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무더위 속에서 몇 시간씩 연습을 하다 보니 우리 후보생들은 '임관식 연습' 자체를 훈련으로 여기게 되었다. 300여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대열을 갖추고, 100자를 족히 넘기는 '장교의 책무'를 외우기 시작하여 동시에 끝마쳐야 하는데 단 한 사람이라도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금세 티가 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본식을 거행하기 전 수차례나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본식이 시작되었다. 임관의 기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족들이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수많은 연습이 낳은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후보생들은 조금의 실수도 하지 않고 완벽한 임관식을 할 수 있었다.
임관식 중간에는 가족들이 직접 '소위 계급장'을 부착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가족들은 오랜만에 나를 만난 기쁨에 취해 계급장 부착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나는 나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었다가는 모든 후보생들의 원성을 살 것만 같아서
'계급장만 빨리 붙여주고 자리로 돌아가세요.'라고 자꾸만 가족들을 재촉했다.

'야, 너는 오랜만에 가족들 만났으면서 왜 이렇게 재촉하냐?' 누나가 이야기했다.
'아, 빨리 가라고!' 가족들과 노닥거리며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임관식이 끝나고 우리 소대장에게
'소대장은 마지막까지 너희들에게 실망했다.
다 엎드려!' 하고 혼날 것만 같았다.
계급 부착까지 끝나고 난 뒤에는 공군의 자랑인 '블랙 이글스'의 축하비행이 있었다.
달리 대한민국 최고의 에어쇼 팀이 아니었다.
블랙 이글스의 축하 에어쇼를 보는 내내
'내가 바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이다.' 하는 강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이곳 땅끝 진주까지 가족들을 부른데 대한 미안함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최고의 에어쇼를 보게 해 줬으니깐.

임관식이 끝나고 나서는 3박 4일간의 특별외박이 주어진다. 한 달 전 유격훈련 후 받았던 2박 3일간의 특별외박 때는 여유가 없어 가족 이외에는 누구도 만나지 못했는데, 이제 훈련도 다 끝나고 '3박 4일'인데 뭐가 아쉽겠나. 나는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이제 군생활 얼마 남았느냐.' 물었고,
'1096일'이 남았다는 내 대답을 들은 그들은
이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특별외박 복귀 이후에는 2주간 '리더십 교육'을 받게 된다. 모든 교육은 실내에서 이뤄졌고,
교육 시간 이외에는 모든 생활이 자유로웠다.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휴대폰'으로 친구들과 자유롭게 연락할 수 있었다.
2주 동안의 리더십 교육은 정말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이 과정이 끝날 무렵이 되면 주변 동기들이 하나둘씩
특기학교 교관들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대부분 'OO학교 교관 OO0 중위입니다. 특기학교 재미있게 지내봐요^^'와 같은 희망적인 메시지였다.
나는 언제 연락이 올까 기다리던 찰나에 연락이 왔다.
‘정보학교 교관 OOO입니다. 준비물은 정복, 약복, 체련복이고 추가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상당히 고압적인 분위기의 메시지였다.
한 동기생이 '네, 알겠습니다. 입교식 날 뵙겠습니다. 필승!'이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자
‘대답하지 마세요. 아참, 그리고 그날 늦는 용감한 소위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늦으면 두고 봅시다.’라는
답신이 왔다. 다른 친구들은 특기학교 교관들과 깔깔대며 연락을 하고 있는데,
나를 포함한 정보 특기 친구들은 모두 침울해졌다.
'왜 정·약복을 챙겨 오라는 건지.' 의문이 들었고,
다른 특기학교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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