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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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생 두 명이 택시에서 내려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장교대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분명 동기

부여를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교관은 '일단 짐부터 풀고 방에서 대기해.'라고 이야기했다.

장교들이 병사들과 부사관들이 보는 앞에서 땅바닥에 뒹구는 모습을 보일 순 없다는 얘기로 이해했다.

', 아무도 보는 숙소에서 굴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배정은 '성적'순이었다. 1등부터 꼴등까지 내림차순으로 방이 배정되어 있었다. 성적이 좋았던

나는 맨 앞방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재빠르게 짐을 풀고 복도에 집합해 잔뜩 겁을 먹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첫날부터 지각을 !'

교관이 고함을 질렀다.

하긴. 장교대에서의 생활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감히 지각을 하지 못했을 텐데.

임관식 때 쓰고 있던 정모를 하늘 높이 던지면서 개념도 함께 날려버린 게 분명하다.

사회 어느 집단이든지 조직에 피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는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군대'에서는 그런 인간들이 더 많고, 그에 따른 피해도 사회에서보다 훨씬 가혹한 것 같다.

교관이 다시 말했다.

'방에 들어가서 체련복 챙겨 나오는데 1 준다.’

'이게 바로 전설의 환복쇼인가?'

나는 아까 짐 푸는 시간 동안 체련복, 약복, 정복을 꺼내기 쉽게 정리해둔 덕에 곧바로 챙겨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약속된 1분이 지났는데도 나오지 않는 동기생들이 있었다.

'1 지났습니다. 얼른 나오세요.'

교관이 갑자기 존댓말을 쓴 탓에 오히려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 한 방에서 4명의 동기생들이 체련복을 입고 뛰쳐나왔다.

교관의 표정이 변했다.

'누가 입고 나오랬지? 챙겨 나오라 했잖아!'

'너희 정신 상태를 보아하니 필요도 없겠다.

그냥 학과장으로 집합해.'

엄청 깨질 줄 알았더니만 예상외로 쉽게 끝이 났다.

학과장에서 우리 장교 초급 과정의 과정장이 간단히 커리큘럼을 소개하고는 '너희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니깐 잘하자.'라고 우리를 다독였다.

'너희 기수까지만 하더라도 초반부터 얼차려 많이 받았는데, 너희 기수부터는 최대한 좋게 말로 해결해보려고 하니깐. 협조해주세요.'

그러나 이 마지막 기회가 지나가면 그 뒤는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생각했던 것만큼 살벌한 곳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정보학교는 대다수의 다른 특기학교가 진주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청주'에 위치해 차를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번화가로 갈 수 있다는 '접근성’ 측면에서 강점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평일에는 절대 '외출금지'였으니깐.

오히려 진주에 있는 동기들은 교육 이후 진주 시내에 나가서 커피도 마시고, 맛집도 찾아다니곤 했는데. 우리에게는 영화관도, 카페도, 맛집도 '그림의 '이었다. 게다가 장교대에서 매일 하던 '아침 뜀걸음'도 있었고, '저녁 점호'도 있었고, 학과장에는 휴대폰도 지참하고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진주에 있는 동기들이 자랑삼아 올리던 사진들도 밤에 숙소에 돌아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상당 부분에서 제약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얼차려'를 받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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