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더분한 스토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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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니

내일이면 어머니가 떠난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학교에 가려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해서

밥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내가 살던 집에는 방이 3개 있었다.

원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주무시는 안방,

큰 형이 자는 방, 그리고 작은 형이 자는 방, 이렇게 세 방이었다.

그런데 나와 어머니가 머무는 2주 동안은

작은 형 방을 나와 어머니가 쓰고, 작은 형은 큰 형과 방을 같이 썼다.      

 

내일 새벽에 일찍 등교하려면 벌써 잠에 들었어야 했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랑 시덥잖은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어머니가 '내일 엄마 가는데 혼자서 잘할 수 있지?'라고 얘기를 하시는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일부터는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에 슬펐던 건지,

아니면 어머니의 그 한 마디에 내 감정선이 자극된 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당장 내일부터 혼자서 헤쳐나가야 할 일들을 잘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질문에 '잘 모르겠어요.'라고 흐느끼며 대답했고,

방이 깜깜해서 내가 울고 있었는지 조차 몰랐던 어머니는

'우니?', '울지마. 마음을 강하게 가져.'라고 하시면서 본인이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냥 내일 엄마 따라서 한국 돌아가자.'라고 하셨는데

그 때 나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기부금'이었다.

 

그래서 '그러면 학교 학비 다 냈는데, 아까워서 어떻게 돌아가요.',

'비행기 값은요.'라고 투정어린 어투로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그런건 엄마 아빠가 다 알아서 할테니깐 걱정하지 말고.',

'그냥 엄마랑 2주간 중국 놀러 왔다고 생각하고 돌아가자.'라고 말씀하셨다.

순간적으로 어머니의 얘기가 솔깃하게 들렸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혼자 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들었다.

               

눈을 떠 보니 어느 덧 새벽녘이었다.

한국의 모든 초등학생들은 곤히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다.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서 씻고 아침밥을 먹었다.

학교 교복이라는데, 체육복인지 잠옷인지 모를 흰 색의 교복을 입고 집 밖을 나갔다.

어머니는 그 이른 새벽시간부터 아들의 아침 등굣길을 배웅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제 이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이미 한국에 도착했을 거다.

그때부터는 진짜 어머니 없이 타지생활을 하게 된다.

물론 지금 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리고 형들이 진짜 가족처럼 잘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진짜 가족은 아니니깐.

 

지금부터 그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를 기약없는 나 홀로 유학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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