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단식을 마치고 드디어 정식 후보생이 되었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이제 저 소대장들은
민간인 신분을 탈피한 우리들에게 어떠한 죄의식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지난 가입교 기간 '나 혹시 군대 체질?'이라고 설레발쳤던 데 대해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오늘부터 소위 '특내'라고 불리는 '특별 내무 기간'이 시작됐다.
무슨 일이든지 빨리빨리 해야 하는 기간이다.
어느 정도로 빨리해야 하냐면, 현재 시각이 '05:57'인데,
제한 시간 5분 내에 ‘06:00’까지 집합해야 한다.
상식을 파괴하는 시간 계산법이다.
백번 양보해서,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고 해도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어느 곳에 가더라도 '5분 전 대기’가 필수적인데,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현재 시각은 '11:00'이다.
야외 훈련장까지는 10분이 걸리는데, 집합 시간은 '11:10’이라고 한다.
쉴 틈 없이 뛰어가면 간신히 집합 시간을 준수할 수 있다.
하지만 '5분 전 대기’는 할 수 없다.
그러면서 소대장들은 '약속을 지키면 너네가 구를 일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곳은 논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 '무논리’를 ‘논리적'으로 이해해보려고 부단히 노력해 보았다.
그리고 '5분 전 대기’를 하기 위해 린처럼 ‘시간을 거슬러'보려고도 했다.
그 노력의 결과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특별 내무 기간'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누차 이야기하지만 소대장들이 요구하는 모든 일들은
애초에 지킬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의 연속이고, 지킬 수도 없다.
그냥 순전히 우리를 굴리기 위한 구실 들일뿐이다.
그냥 '나는 죽일 놈이야.’라고 자기 암시라도 하는 게 편할 것이다.
이 기간은 사회물을 빼는 기간이다.
공군 학사장교로 입대하면
누구는 서울대 출신, 누구는 아이비리그 출신,
또 누구는 5급 사무관 출신 등 사회에서 이른바 잘 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밖에서는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봤을 테다.
설마 그 훌륭한 사람들이 살면서 네 발로 기어 볼 일이 있었겠나.
그러나 이 곳 장교대에서는 저 빨간 모자 쓴 사람이 기라면 기고,
소리 지르라면 소리 질러야 한다.
분명 사회에서 만났으면 내 밑에서 일할 사람일 텐데 말이다.
특별 내무 기간의 핵심은 이것이다.
당신이 사회에서 얼마나 잘났는지, 그건 알 바가 아니다.
일단 '군인이 되기로 했으면 명령에 복종해라' 이것이 핵심이다.
여담으로 말하면,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있다가도
방송이 울리면 뒤처리도 못한 채 바로 뛰쳐나가야 한다.
애초에 볼 일 볼 시간도 없어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새벽 4시쯤 일어나야 한다.
정말 급할 때는 앞사람이 물도 안 내렸는데 이어서 볼 일을 보기도 한다.
더러운 이야기지만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특내기간에는 '제식’이나 기본적인 '군대 예절’ 등을 배우기도 한다.
군필자가 아닌 이상 모두에게 생소하고 어렵기 짝이 없다.
가만히 지켜다 보면 그 오합지졸 같은 모습이 정말 가관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당신이 소질이 있어 처음부터 잘하면
'네 동기들은 다 헤매고 있는데 혼자 잘났냐’며
동기들을 저버린 나쁜 놈이란 명목으로 동기부여를 받을 테고,
못하면 '너 때문에 네 동기들이 벌 받는 거다'라며
동기들에게 폐 끼치는 모자란 놈이란 죄목으로 혼날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혼나는 건 마찬가지다.
따라서 모든 걸 초월한 마음가짐으로 이렇게 생각해라.
'나는 사회에서 사무관이 아니라 사실 범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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